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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의 수필

도파민디투 2023. 1. 4. 10:04

내가 열두 살 되던 어떠한 가을이었다. 근 오리나 되는 학교를 다 녀온 나는 책보를 내던지고 두루마기를 벗고 뒷동산 감나무 밑으로 달음질하여 올라갔다.
쓸쓸스러운 붉은 감잎이 죽어가는 생물처럼 여기저기 휘둘러서 휘
날릴 때 말없이 오는 가을바람이 따뜻한 나의 가슴을 간지르고 지나 가매, 나도 모르는 쓸쓸한 비애가 나의 두 눈을 공연히 울먹이고 싶게 하였다. 이웃집 감나무에서 감을 따는 늙은이가 나뭇가지를 흔들 때 마다 떼지어 구경하는 떠꺼머리 아이들과 나이 어린 처녀들의 침 삼 키는 고개들이 일제히 위로 향하여지며 붉고 연한 커다란 연감이 힘 없이 떨어진다.
음습한 땅 냄새가 저녁 연기와 함께 온마을을 물들이고 구슬픈 갈 가마귀 소리 서편 숲속에서 났다. 울타리 바깥 콩나물 우물에서는 저 녁 콩나물에 물 주는 소리가 척척하게 들릴 적에 촌녀의 행주치마두 른 집세기 걸음이 물동이와 달음박질한다.
나는 날마다 학교에서 돌아오는 길로 하는 것이라고는 이것이 첫 쩨번 과목이다. 공연히 뒷동산으로 왔다갔다 한다.
그날도 감나무 동산에서 반숙한 연감 하나를 따먹고서 배추발 무 반으로 돌아다녔다

지렁이 똥이 몽글몽글하게 올라온 습기있는 밭이 랑과 고양이밥이 나 있는 빈 터전을 쓸데없이 돌아다닐 적에 건너편 철도 연변에 서 있는 전기불이 어느 틈에 반짝반짝 한다.
그때에 짚신 신은 나의 아우가 뒷문에 나서면서 부엌에서 밥투정 을 하다 나왔는지 열 손가락과 입 가장자리에는 밥알투성이를 하여가 지고 딴사람은 건드리지도 못하는 저의 백동 숟가락을 거꾸로 들고 서서,
"언니 밥 먹으래."
하고 내가 바라보고 서 있는 곳을 덩달아 쳐다본다.
"그래
하고 대답을 한 나는 아무 소리도 없이 마루끝에 가서 앉으며 차려 논 밥상을 한 귀퉁이 점령하였다. 밥먹는 이라고는 우리 어머니와 일 해주는 마누라와 나와 나의 다섯 살 먹은 아우뿐이다.